회계사님, 돈 좀 빌려주세요.
남한테 돈 빌리는 것이 제일 힘들다. 친구나 친척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니 생판 모르는 은행 사람들이 쉽게 돈을 빌려줄까.
돈 빌려갈 사람 좀 소개하라는 전화를 은행에서 자주 받는다. 그런데 정작 돈이 필요한 손님들은 조건이 맞지 않으니 문제다. 반대로 은행 구미에 딱 맞는 사람들은 돈이 필요 없다.
오늘 이른 아침 출근길에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손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미국 온지 10년 만에 집을 하나 사려고 한다. 한국에서 예쁘게 살림만 했던 부인에게 항상 미안해했던 남편. 얼마나 좋을까.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전화 너머 표정은 울상이다.
20%를 다운하고 나머지를 은행 모기지로 얻으려는데 쉽지 않단다. 처음 이민 와서 관리를 잘못한 신용점수가 문제란다. 결국 점수를 고쳐주는 업체를 소개해주고 몇 가지 빨리 점수를 올릴 수 있는 방법들을 설명해줬다. 전화를 끊고 사무실에 오면서 마음이 계속 짠했다. 그동안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힘들게 살았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은행은 돈을 빌려줄 때 아주 까다롭다.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의 속마음을 열어볼 수 없으니 객관적인 자료로 상환 능력이 있는지 판단한다. 최근 3개월 은행 기록, 일을 하고 있다는 고용 증명서(employment verification), 주급 명세표(pay-stub), 과거 2년분 세금보고 서류, 크레딧 점수, 사업체의 수입 등을 따져본다.
물론 소득이나 점수가 부족하더라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건이 나빠진다. 앞으로 은행 돈을 빌릴 예정이라면 적어도 2년 전부터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막연하게 은행에 가면 퇴짜 맞기 쉽다.
특히 신경을 써야할 것이 수입 대비 부채의 비율(DTI 비율)이다. 두 종류가 있는데 front-end 비율은 매달 주거비(렌트)와 세금공제 전 총소득의 비율을 말한다. 신용 점수나, 융자 종류 등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8%를 넘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 back-end 비율은 매달 부채 상환액(집 모기지, 자동차 할부금, 카드 대금 등)과 소득의 비율을 말하는데, 보통 43%를 넘지 않아야 한다. 전국 평균은 각각 22%와 34% 안팎이다.
은행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내 DTI 비율을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회계사에게 물어봐도 간단하게 알 수 있다. DTI 비율이 융자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시작점이다. DTI 비율이 “이젠 은행에 가봐라”라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신용점수도 예쁘게 고치고, 세금보고도 예쁘게 하고. 예쁘게 다듬을 것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