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를 바꿀 때
작년에 왔던 손님이 금년에는 오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는 전화를 걸었는데 지금은 안 그런다. 손님이 더 불편할 테니까. 전에는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왜 그랬을까 원인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그 손님의 파일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음도 함께 접는다. 나를 떠나는 손님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보다 더 나은 회계사들이 많다는 뜻이다. 내가 더 열심히 하여야 하는 이유다.
며칠 전 추운 날, 뉴욕의 A 회계사와 뜨뜻한 도가니탕을 먹었다. 그 분 사무실에서 내게로 온 손님과 함께였다. 식사 중에 그 회계사가 이런 말을 했다. “다른 회계사들은 나를 헐뜯으려고만 하는데, 문 회계사는 그러지 않아서 참 좋다.” 입장을 바꾸니 그 분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내 자료를 넘겨받은 새로운 회계사가 손님 앞에서 나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하는 것.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것도 내가 더 열심히 하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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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도 장사니까 경쟁이 있다. 손님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들 애쓴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EA까지 합치니 10명 이상의 새로운 얼굴들이 보인다. 진입장벽이 낮은 이 시장에서 당장 증명할 수 없는 품질과 서비스는 사실 뒷전이 되고 만다. 낮은 가격과 경쟁자 헐뜯기가 새 손님을 확보하는 쉽고 자극적인 방법이다. 슬프지만 현실이 그렇다.
자료를 넘겨받을 때 상대방 회계사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처음 만난 뉴저지의 B 회계사와 이런 일도 있었다. 새로운 손님의 자료를 받으러 갔다가 점심을 얻어먹었다. “이렇게 정중하게 자료를 요청하는 회계사는 처음 본다.”는 말을 들었다. 마침 점심때가 되었으니 함께 나가자고 했다. 창문에 김이 서린 어느 칼국수 집이었다. 그 회계사의 말에 따르면 무슨 점령군이라도 된 것처럼 자료를 당장 내놓으라는 식의 회계사들이 대부분이란다. 사실은 전부 다 그렇단다. 그래서 이렇게 자료를 넘겨주면서 기분이 좋은 적이 없다고 했다. 자료도 받고 점심까지 얻어먹은 그 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 참 즐거웠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도가니탕 집도 있고 칼국수집도 있다. 입맛에 맞는 집에 갈 권리는 온전히 손님의 것이다. 음식 맛과 서비스를 높이는 것은 식당이 할 일이다. 같은 일 하는 사람들끼리의 전후사정을 무시한 헐뜯기는 우리의 품격을 스스로 낮추는 일이다. 빼앗기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놀랍게도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전문가 집단의 품격을 올리는 것은 결국 전문가 개개인의 몫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