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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사랑

단 한 번의 사랑

1967년생 정영숙. 내 첫사랑이다. 하필이면 그날도 비가 왔다. 마침내 그녀의 집 주소를 알게 된 날. 가슴은 떨리고 머리는 혼미했다. 당장 안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서 먼 거리도 아니다. 나는 일산으로 차를 몰았다. 약속도 없었고 확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녀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우산에 가려졌지만 모를 리 없다. 노란색 유치원 버스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딸. 그 딸의 가방을 건네받으면서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엄마. 헤어스타일은 바뀌었지만 10년 전과 똑같다. 비를 피해서 급하게 사라진 아파트 정문. 그곳에서 나는 한 참을 바보같이 서 있었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피라는 것을 마셨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구의 담배도 피워봤다. 내 나이 30은 그렇게 저물었다.

“내 영혼에 그 사람이 습기처럼 스며들어 있습니다.” 김홍신의 소설 <단 한 번의 사랑> 첫 문장이다. 그의 말이 맞다. 신이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찬란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휘황찬란한 예술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지독하게 아프고 달콤하며 모지락스럽고 잔인하기도 하다.

며칠 전, 3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모두 나이 50 안팎의 회계사들이다. 내가 한국에 다녀온다고 하자, 메르스 예방차원에서 먹고 가란다. 고추전과 삼겹살에 소주를 시켰다. 이미 1주일을 미뤘는데, 더 미룰 수는 없는 출장이다. 메르스가 미국의 해외금융재산보고(FBAR) 6월 30일 마감 날짜를 연장시켜줄리 없다.

그 회계사들과 처음에는 네일가게 보도, 최근의 IRS 감사에 대한 각자의 경험. 이런저런 일에 대한 말을 나눴다. 그러다 술잔이 돌고 돌자, 어느덧 내가 나눠준 소설책 <단 한 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바뀌었다. 첫사랑은 누구든지 아름답게 기억된다. 함부로 나눌 수 없는 오염되지 않는 젊은 시절의 추억이다. 그래서 아무 하고나 나누지 않는 것이 첫사랑이다.

그날의 그 공식적인 만남이 따뜻하게 끝난 이유는 각자의 첫사랑 기억을 나눠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어쩌면 영원히 비밀에 붙여져야 하는 은밀한 기억들을 공유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는 부부 동반으로 만나기로 했다. 어떤 술 취한 친구가 전부 나발을 불어대면 공멸인데… 그런 걱정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단 한 번의 마지막 사랑이 있는, 바로 그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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