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출을 위한 10만 달러
회계사는 손님의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회계사가 있다면, 손님으로부터 이미 마음이 떠났다고 봐야 한다. 삼성전자의 회계사는 반도체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팔리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도 그렇게 빡세게 돌리는지 모르겠지만, 25년 전 우리들은반도체 만드는 과정을 모르면 삼성전자에 출장도 못 나갔다.
그러나 최근의 새로운 비즈니스들을 보면, 나도 이제 늙었구나 싶다. 최근에 충청남도 대전이 5개의 유망 중소기업을 선정해서 미국 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모든 진출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상품과 기술을 가졌다면 충분히 큰물에서도 승산이 있다. 그런데 5개의 사업 내용 중 내가 한 번에 이해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도대체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몰랐다. 회사 이름도 모두 테크노, 바이오, 나노 등 생소하다. 변화무쌍하게 발전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나는 그렇게 뒤처지고 있다.
작년 이맘때 쯤, 미국 법인의 한국 진출건 때문에 큰 미팅이 있었다. 어떤 형태로 진출하고 어떤 방법으로 금융을 일으키며, 또 어떤 과정으로 투자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지 계획을 세우는 것. 그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더 힘들었던 기억은 내 자신의 무식함을 넘는 일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것인지, 그런 의심을 회의 내내 떨칠 수 없었다. 멀쩡하게 생긴 미국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품을, 눈에 잡히지도 않는 방법으로, 그것도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 나가서 팔겠다는 것. 나는 복날 강아지처럼 잔뜩 긴장만 할 뿐, 머릿속은 텅텅 비어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국에 진출한 그 회사가 아주 대박을 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장사가 될까, 그런 의심을 했었으니, 나는 손님보다도 못한 회계사였던 셈이다. 이렇듯, 똑똑한 사람들이 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방법으로 돈들을 벌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인도하지는 못할망정 질질 끌려 다니고 있으니.
정부도 마찬가지다. 세법이나 상법, 그리고 각종 은행 규정들은 옛날 그대로다. 가장 중요한 외국인투자촉진법이나 외국환거래법도 그대로다. 최저 자본금 1억 원(약 10만 달러) 규정 때문에 지점(Branch)이나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 형태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손님들을 보면 안타깝다. 규모가 작은 비즈니스의 경우에는 10만 달러가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것을 완화시켜서 법인세도 더 걷고 젊은이들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