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
나는 숫자로 먹고 산다. 4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았다. 상업학교에서 주산 부기를 배워서(요새 뉴스에 많이 나오는 덕수상고다) 은행에 취직을 했고, 거길 그만두고 들어간 대학도 경영학 전공이다. 중위로 시작한 군복무도 몇 명 뽑지 않는 공인회계사(CPA) 특수 장교였고, 대학원에서 공부한 것도 회계학과 세법이다.
지금까지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지난 40년 가까이 그렇게 숫자와 함께 살았고, 오늘도 그걸로 밥 벌어 먹고 살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숫자만 갖고는 설명이 안 되는 가치들이 있다. 계산기만 두드려서는 찾을 수 없는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
때는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해변.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수송기 800대에서 쏟아진 13,000개의 낙하산. 그리고 이어지는 연합군 폭격기들의 폭탄 투하와 전함들의 함포 사격. 드디어 아침 6시. 앵~ 신호와 함께, 상륙정들이 노르망디 해안으로 쏜살같이 치달린다. 역사상 가장 긴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상륙정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독일군의 기관총 사격. 병사들의 머리가 어깨가 그리고 가슴이 짓이겨진다. 해안가 모래밭은 뻘건 피밭으로 변해간다. 미군 전사자만 1,500명. 양측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포로로 잡힌 병사들의 숫자가 2만 명.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는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한다.
아들 넷을 모두 전쟁터에 보낸 미국의 어느 어머니. 형들 셋이 모두 전사하자, 군은 막내 ‘제임스 라이언’만이라도 찾아서 어머니 품에 돌려보내기로 결정한다. 얼굴 사진 한 장 없이, 사지에 던져진 8명의 수색대. 지극히 비합리적인 미션이다. 1명을 구하기 위해서 8명을 보낸다? 내가 아는 상식과 숫자로만 따지면 이해가 안 간다.
살아 돌아온 자는 단 2명 뿐.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다수의 희생이 정당한 것일까? 그렇다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년 전 그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6월 6일은 한국의 현충일, 어제는 6.25 전쟁일, 그리고 다음 주 7월 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 우리 선배들의 피와 땀 없이 이 국가가 이렇게 설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책임과 역할이 주어진 것일까? 총에 맞은 밀러 대위(톰 행크스)가 라이언 일병(맷 데이먼)에게 숨이 끊어지면서 말한다. “값지게 살아. 우리 몫까지(James.. earn this, earn it)” 진짜 중요한 가치는 내가 믿는 숫자와 계산, 그 너머에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