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은퇴는 자식에게 짐
2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어느 손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묻는다. “문 회계사는 은퇴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지?“ 내가 가는 길만 따라가도, 최소한 중간은 갈 것 같아서 그렇단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집에 가서, 제 아내에게 물어보고 알려드릴게요.“
은퇴 설계는 정확한 답이 없다.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니, 준비도 다르다. 더욱이 준비 안 된 은퇴는 재앙이다. 본인에게는 당연히 재앙이고, 자식들에게는 더 큰 재앙이다. 미국인들의 평균수명은 79세, 한국은 83세라고 한다. 나는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에 80살 넘게 산 임금은 영조 한 명뿐. 당시 평균 수명은 24살. 불과 400년 만에 수명이 4배 가까이 늘었다. 평균 수명은 이렇게 길어졌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좋은 음식에 화려하게 살았을 그룹 회장들만 하더라도, LG 구자경, 대우 김우중, 한진 조양호 회장이 모두 작년(2019년)에 사망했다.
우리는 길어진 수명과 갑작스런 죽음, 그 둘 다를 준비해야 한다. 옛날에는 은퇴할 때 90만 달러만 있으면 남은 30년 동안 매년 3만 달러씩 쓴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계산이 안 된다. 30년만 살 줄 알고 막 썼는데, 30년 뒤에도 계속 살아있으면 어쩌나. 걱정이다.
이제 사망준비, 은퇴준비가 중요해졌다. 누구나 골든 라이프, 해피 시니어의 꿈을 꾼다. 그런데 준비 없는 은퇴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그 은퇴 설계(retirement plans)에서 세금은 핵심이다. 갑자기 회계사로써의 본색을 드러내서 미안한데, 사실 회계사만큼, 더욱이 한국 세금관계까지 잘 아는 회계사만큼, 본인의 재정과 은퇴설계에 적합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나는 손님이 노후 은퇴연금 같은 것을 가입한다고 할 때, 나는 꼭 그 브로커와 함께 내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남의 무지를 자기 돈벌이에 써먹는 사람들. 생각 없이 서명했다가 나중에 자식들한테 욕먹는 부모 될지도 모른다. 사실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CFP(공인 재무설계사)와 CFA(공인 재무분석사) 시험을 연거푸 준비하다보니, 지금까지 내가 고객들에게 참 무책임하게 상담했구나,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돈벌이에 급급해서 정말 엉터리로 살았다. 무조건 앞으로 달리기만 하면 1등 하는 줄 알았으니 말이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결국은 죽는다. 그것은 모두 같다. 그러나 은퇴 이후의 삶은 모두 다르다. 준비 한 사람과 준비 안 한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노년.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구구팔팔이삼사’라는 말이 있다. 건강하게 웰빙(well-being)하며 살다가, 웃으며 떠나는 웰다잉(well-dying). 은퇴는 어차피 혼자 가는 길이다. 그러나 그 준비는 반드시 실력도 있고 내 일처럼 봐 줄, 정말 좋은 전문가와 같이 가야 한다.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