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이 맞는 회계사
요새는 결혼할 때 거의 궁합(宮合)을 보지 않는가보다. 처녀 총각 사이의 궁합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회계사와 손님 사이의 궁합은 중요하다. 서로 ‘코드’가 맞고 박자가 맞아야 한다. 안 그러면 손님은 손님대로, 회계사는 회계사대로 둘 다 손해다.
똑같은 일을 해도, 일단 서로 뭐가 맞아야 신이 나지 않겠는가. 신이 난 회계사가 하는 일과, 마지못해 하는 회계사가 하는 일의 결과가 같을 수 없다.
맨해튼에서 종업원 10명의 델리 사업체를 갖고 있는 김 사장이 있다. 그는 아주 바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말도 없이 캐셔가 나오질 않았다. 거기다 새로 온 배달 직원은 실수가 많아서 손님 다 놓칠 판이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담당 회계사로부터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달에 낼 세일즈 택스(sales tax) 때문에 상의할 것이 있단다. ‘아니, 그것을 CPA가 알아서 해줘야지. 내가 그걸 알면 왜 돈 줘가면서 회계사에게 일을 맡겨?’ 속으로 치미는 답답함을 억누른다. 그런데 회계사는 눈치도 없이, 이번에 은행에 예금된 것이 얼마고, 물건 들어온 것이 어떻고… 김 사장은 어디 대충 알아서 다 해주는 회계사 없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투박하게 끊는다.
그런데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세탁소 박 사장의 불만은 정반대다. 담당 회계사가 자상한 설명도 없이 무조건 서명을 하고 세금만 내라고 한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돌다리를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불안하다. 누가 세무 감사에 걸려서 몇 십만 달러를 물어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집에 가도 잠이 오질 않는다.
그래서 담당 회계사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더니, 오히려 핀잔만 들었다. 걱정하지 말라면서, 당신은 장사만 잘 하란다. 이러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내가 전부 뒤집어쓰는데. 박 사장은 전화를 놓으면서, 꼼꼼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회계사 어디 없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를 만들어 봤지만, 결국 자상하게 설명을 듣고 싶은 손님은 그렇게 해주는 회계사를 만나야 한다. 반대로, 손님에게 꼬치꼬치 묻고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는 회계사는 대충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손님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물론, 길게 보면 서로 안 맞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손님이나 새로운 회계사를 찾아서 떠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서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그것은 둘 다 손해다.
손님에게 가장 좋은 회계사는 신이 나서 내 일처럼 해주는 회계사다. 그렇게 신명이 나야, 손님 세금을 한 푼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10분이라도 더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신명이 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 손님과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회계사도 결국엔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와 잘 맞는 손님과 더 높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결국 장기적으로는 손님이 세금과 벌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