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제가 시급하다
타인의 실패가 때로는 보약이다. 오늘 들려주는 나의 실패를 통해서, 노동법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0여 년 전, 나는 회계사만 해 갖고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었다.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지만, 그때는 더 그랬다. 그래서 맨해튼에서 사업 하나를 시작했다. 처음 몇 년은 좋았는데, 미국 최대 서비스 노조(32BJ SEIU)와 결국은 싸움이 붙고 말았다.
유난히 천장이 높은 방의 긴 마호가니 원목 테이블. 그 건너에, 매일 얼굴을 보고 함께 일하는 내 직원이 앉아 있다. 그 옆에 앉은 변호사를 보니, 바늘 하나 들어갈 구멍도 없어 보였다. 그 첫 번째 모임에서 나는 최대한 침착했어야 했다.
그런데 난 바보같이 굴었다. “지난 번, 네 아이 돌잔치 할 때 1,000달러 축하금도 주지 않았니? 어떻게 네가 내게 이럴 수 있어?” 그런 어린애 투정 같은 말만 쏟아냈다. 아무 상관없는 말을 누가 경청하겠나. 감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처음에 무너지면 일어서기도 힘들다.
첫째도 자료, 둘째도 자료, 그리고 마지막도 자료였다. 일단 그 방에 들어서는 순간, 끈적끈적한 감정에 호소할 일은… 사실은 하나도 없다. 그냥 건조하고 지루한 서류 공방이 이어질 뿐이다. 제대로 된 증빙 자료가 없다면 이길 수 없는 것이 노동법이다. 그 다음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직원과 웃으며 일해야 하는 것이 미국의 노동법이다.
처음에는 과거에 노조 쪽에서 일을 했었다는 변호사를 썼다. 그러나 불어나는 변호사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만족은 더더욱 없었다. 결국 나 혼자 법정에 섰다. 참 외로웠다. 내 직원들의 숫자가 15명이 넘는다고, 뉴욕주 법원이 아닌 연방 법원 관할이 되었다. 직원 숫자나 내용에 따라서 관할 법원이 달라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종업원 복무규정(Handbook)과 Spread of Hours 규정도 반대편 노조 변호사들을 통해서 배웠다. 난 그때 한마디로 참 무식했다.
규정을 알고 증빙을 준비하지 못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이 노동법이다. 그것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준비하여야 한다. 대충 알고 대충 준비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을 나는 많이 봐왔다. 요새 말들이 많은 시급제만 해도 그렇다. 잘 모르는 10명의 조언보다 확실한 1명의 조언이 더 절실하다.
하여간,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변호사도 아닌 회계사가 어떻게 그렇게 노동법을 잘 아느냐?” 그것은 맨해튼 연방 법원 앞의 토마스 폐인(Thomas Paine) 공원 분수대. 그 앞에 앉아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