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CPA같지 않은 CPA
어느 회계사가 내 글을 베꼈다. 이름만 바꿔서 어디에 썼다. 그럴 수 있다. 펄펄 뛸 일이 아니다. 지식이나 경험은 여럿이 나눌수록 더 가치가 올라가는 법이다. 이런 일도 있다. 내가 광고에 항상 쓰는 어느 문구가 있는데, 그것을 요새 어느 회계사가 똑같이 쓴다고 한다. 몇 달이 걸려서 찾은 귀한 말이지만, 그것도 그럴 수 있다. 세종대왕이 그 말을 나 혼자만 쓰라고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예를 하나만 더 들자. 지난달에 있었던 세미나. 많은 참석자들 중에는 다른 회계사나 직원들이 절반은 될 것이라고 했다. 과장이 심했지만, 누가 나중에 귀띔을 해줘서 알았다. 고등학교 교실에 다른 고등학생이 들어가서, 주제넘게 가르치고 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나도 옛날에 다른 회계사들의 세미나에 가서 많이 배웠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해내고 있는 것도 모두 그 선배 회계사들 덕분이다.
글을 쓰다 보니, 서운한 푸념만 늘어놓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회계사도 있다. 본인의 라디오 상담 프로그램에 나가서, “문주한 회계사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을 했단다. 나중에 들었을 때, 어깨가 으쓱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그 회계사가 나보다 10층 높이에 있는 줄 알았다. 그 말을 전해 듣고, 그 선배는 나보다 사실은 100층 이상 높은 곳에 있음을 실감했다. 선배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결론을 이야기할 차례다. 요새 많은 회계사들이 손님들에게 편지들을 보낸다. 2016년 세금보고 준비와 2017년 세법과 노동법 변경, 이번 편지에는 담을 내용도 많다. 그런데 왜 우리 회계사들은 모여서 단체 작업을 하지 못할까, 그것이 참 궁금하다. 나중에 보내는 것은 각자 보내더라도, 서로 머리를 맞대서 공동 작업을 하자고 제안하고 싶었다. 영어 잘하는 학생과 수학 잘하는 학생이 합치면,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는 100점 학생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한국에서 회계사를 할 때, 삼일회계법인의 서태식 대표가 어느 자리에서 나를 소개할 일이 있었다. “문주한 회계사 – 우리 회계법인의 가장 CPA 같지 않은 CPA입니다.” 너무나 서운해서 가슴이 막히고, 내 출셋길도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보다 더한 칭찬도 없다. 가장 회계사 같지 않은 회계사. 나는 그렇게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