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자의 한국 부동산
비 오는 어느 날 아침, 멀리 LA에서 도와줄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다. 항상 그렇듯이 무례하고 다급한 목소리다. 이민 오기 전부터 갖고 있던 부동산이 여럿. 그런데 시민권을 받은 뒤에도 한국에 ‘계속보유’ 신고를 하지 않았단다. 당시에 이민 변호사도, 한국 영사관에서도, 그리고 자기 회계사까지, 그 누구도 그런 내용을 미리 말해주지 않아서, 그래서 지금 손해가 막심하다고 분통해 했다.
그 분이 통화를 했다는, 한국 구청의 부동산정보과 직원 말은 맞다. 미국 시민권을 받으면, 이제 미국 사람이다. 영어를 못 해도 미국 사람이고, 매일 김치를 먹어도 한국 사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이 소유하는 부동산은 별도로 관리한다. 그런데 내가 미국 시민권 선서를 하는 순간, 내 아파트가 한국사람 소유에서 외국사람 소유로 바뀐다. 따라서 영주권자가 시민권을 받으면, 바로 해당 구청에 ‘부동산 계속보유’ 자진신고를 하라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토지(땅)만 그러는 줄 아는데, 부동산은 모두 신고대상이다. 관련 법률의 해당 조문을 그대로 적으면, ‘대한민국 안의 부동산등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인으로 변경된 경우(= 시민권을 받은 경우), 그 외국인이 해당 부동산등을 계속보유하려는 경우에는, 외국인으로 변경된 날부터(= 시민권 받은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신고관청에 신고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③항). 여기서 말하는 ‘부동산 등’을 토지 하나로만 제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반 건축물과 분양권(입주권)까지 모두 포함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다시 LA 상담 전화로 돌아가서, 이 문제 때문에 건물 하나를 지금 팔지 못해서 손해가 막심하단다. 이런 내용을 홍보하지 않은 영사관을 고소하겠단다. 큰 벌금도 아니고 해결이 어려운 문제도 아니지만, 처음 당하는 당사자의 놀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죽하면 얼굴도 모르는 내게까지 전화했을까 싶어서, 그리고 당장 영사관을 고소(?)라도 할 기세여서,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한 참을 달래고 또 달랬던 기억이 난다.
그 사이 내 모닝커피는 이미 식었으니, 커피 한 잔을 다시 내리면서 창밖을 본다. 실반 애비뉴의 빗줄기는 어느새 더 굵어져 있었고,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그래도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새까만 먹구름만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