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능력과 말의 무게
삶의 무게, 죽음의 무게. 그 중간 어디쯤, ‘말의 무게’가 있다. 누구의 말은 머리카락 한 가닥보다 더 가볍다. 그러나 누구의 말은 지구보다 더 육중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말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지만, 동시에 건강한 사람을 자빠뜨리기도 한다.
그 말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언론과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례가 하나 있어서 소개한다. 뉴욕타임즈(NYT)가 2주 전,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 개혁안 때문에 중산층의 세금이 오히려 4천 달러 더 늘었다고 썼다. 그러자 세계의 많은 신문과 방송들이 그 기사를 그대로 베꼈다.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뉴욕타임즈가 갖는, 부인할 수 없는 말의 무게다.
그러자 월스트릿저널(WSJ)이 4일 뒤, 뉴욕타임즈의 세금 계산이 틀렸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NYT가 원래 기사를 쓰면서, 자녀 둘을 가진 맞벌이 부부를 가상해서 숫자들을 자세하게 비교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다시 계산을 해볼 수 있었다. 결국, 며칠 전 NYT는 부끄럽게도 정정 기사를 내야만 했다. 다시 계산을 해봤더니, 원래 것이 틀렸다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런데 WSJ가 어제 다시 받아서, ‘뉴욕타임즈는 아직도 트럼프의 세법 개정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자. 뉴욕타임즈는 미국 최고의 온라인 세금 전문업체인 터보택스(TurboTax)의 계산과 말을 믿고 기사를 썼다. 다른 작은 신문사들은 뉴욕타임즈의 말을 믿고 그대로 보도했다. WSJ는 공신력 있는 NYT 이었기 때문에 아까운 지면을 할애했다. 이것이 바로 서로가 인정하는 말의 무게다.
나도 그때, 다시 계산을 해봤고(회계사 30년 하면, 이렇게 숫자만 보면 확인부터 하고 싶어지는 직업병이 생긴다), 나 역시 뉴욕타임즈의 계산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넘어갔다. 뉴욕타임즈가 갖는 말의 권위에 눌렸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하는 말의 무게를 더 높이려고 매일 애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흥부가 내 상담을 듣고 가서, 놀부에게 ‘문주한 회계사가 그러던데…’라고 전했을 때, 놀부가 그대로 믿어주는 것. 그것이 내 말이 갖는 진짜 무게다. 물론 그 무게는 그냥 쉽게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내 입에서 나갔다고 다 말이 아니다. 상대방 귀에 들린 것이 진짜 말이다. 옛날에는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100% 전달해주고 싶은 욕심만 앞섰다. 그러나 지금은 손님의 마음과 사정을 헤아리고, 더 많이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상담은 결국 소통이기 때문이다. 소통 능력이 없는 해결책 제시는 일방적인 고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