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남자 산부인과 의사의 출산 경험

애기 한 번 낳아보지 못한 남자가 산부인과 의사를 잘 한다. 서울 어느 대학병원에 있는 내 친구의 형 얘기다. 언젠가 식사 자리에서 내가 물었다. 어떻게 출산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남자가 그렇게 산부인과 의사를 잘 할 수 있느냐고.

지난 3월 23일, 사업장 강제폐쇄가 있던 날, 나는 모든 고객들에게 단체 이메일을 보냈다. 자격이 되는 사람들은 실업수당(실업보험 급여)을 빨리 신청하라고. 뉴욕과 뉴저지, 커네티컷 노동국 웹싸이트에 있는 신청 방법들을 정리해서 보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고객들이 실제로 실업수당을 신청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맞닥뜨렸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나 요령은 노동국 웹싸이트에 쓰여 있는 내용을 그대로 풀어서 한국말로 설명하는 것에 불과했다. 갑자기 컴퓨터가 먹통이 된다든지, 지금까지 힘들게 입력한 것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든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전혀 답변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더욱이 질문을 영어로 더듬더듬 불러주면, 답변은 고사하고 질문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문제는 한 번도 실업수당을 실제로 신청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있었다.

그렇게 전화를 이틀정도 불이 날 정도로 받다가, 산부인과 의사인 그 형님 생각이 났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내가 직접 내 이름을 넣어서 실업수당을 신청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름대로 자신하던 나도 그렇게 어느 질문은 답변에 고민을 한참 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도 여느 고객들처럼, 거의 마지막에 가서는 지금까지 입력해놓은 모든 것이 갑자기 확 날아가 버렸다. 오 마이 갓! 나는 하루 종일 컴퓨터를 만지는 사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에는 모니터가 6개나 된다. 하물며 컴퓨터를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싶었다. 결국 나는 이틀 동안 ‘애기, 그냥 쑥 낳으세요. 쉽잖아요.’라고 무책임하게 말한, 출산의 경험 하나 없는 남자 산부인과 의사였던 셈이다. 물론 세상의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나처럼 그런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남자들이 더 낫다는 글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어쨌든 그 실업수당을 신청하는 실제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손님이 전화로 ‘갑자기 날아갔어요. 어떻게 하죠?’ 하고 물으면, 나는 겉으로는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설명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강아지가 숙제를 먹었다’는 말 보다 더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니 서로 답답할 수밖에. 실업수당 신청 초기에 나는 손님들이 답답했고, 손님들은 내가 또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시험 삼아 해 본 것이었지만, 실제로 실업수당 신청을 끝까지 해본 뒤에야 비로소 나는 더 확실하고 빠른 답변을 줄 수 있었다. 암 전문의가 암에 걸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런 일은 전문가가 제일 먼저 실제로 해보는 것이, 그래야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 이틀 동안, 폭주하는 전화벨소리에 때로는 성의 없고 예의 없이 답변한 모든 고객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린다.

그나저나 이렇게 하루 종일 노동국 웹싸이트에 들어가서 침침한 눈으로, 입력하면 날아가고 입력하면 또 날아가는, 이것이 결국 우리 실업자들의 새로운 풀타임 ‘잡(job)’이 되어버린 이 황당한 경험. 물론 정부의 인력이나 컴퓨터 용량이 하루아침에 늘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마음은 참 답답하다. 실업수당 신청 자체가 첫 경험인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쉽게 입력할 수 있도록, 조속히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고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소화할 수 있도록 컴퓨터 처리 능력을 하루빨리 늘려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