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칼럼 [세금/회계] 부자가 무조건 나쁜가?
양극화 시대, 정당한 부자들이 칭송받는 사회를 위하여
자본주의의 끝은 양극화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경쟁이며, 경쟁 속에서 돈의 쏠림 현상은 피할 수 없다.
이는 부(wealth)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하층부는 더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초래한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수많은 통계와 직감은 그런 미래가 멀지 않았음을 경고한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좌파냐 우파냐, 진보냐 보수냐 하는 구분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념의 ‘좌우 대립’보다 훨씬 본질적인 현대 갈등은 ‘상하의 양극화’다. 그리고 이 양극화는 불행히도 더 확대되고, 더 고착화되고 있다.
부의 양극화는 정치의 양극화를 불러온다. 선거는 결국 ‘머릿수’로 승패가 갈린다. 일부 정치인의 구호와 정책은 더 자극적이고 더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문제는 일부 정치 구호가 부자들을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려는 이분법적인 태도에 있다.
한번 냉정히 따져보자. 메디케이드(Medicaid)나 대학 재정보조금(financial aid)을 받기 위해 일부러 수입을 숨기는 사람과, 매년 수만 달러씩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 중 누가 더 책임지는 시민인가? 영화 ‘기생충’에서 위장취업과 문서 조작으로 남을 속이는 송강호 가족이 더 정의로운가, 아니면 그런 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속는 이선균 가족이 더 나쁜가?
기회의 균등은 정의지만, 결과의 균등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정의가 아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선하다고 믿거나, 부자라는 이유로 평생을 부정하게 살았을 것이라 단정하는 것은 편견일 뿐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부자들은 성실하고, 검소하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오만하고 방탕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자신의 권리와 삶의 영역이 침해되지 않는 한, 오히려 누구보다 평화적인 사람들이다.
정당하게 축적된 부는 결코 타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로 무조건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되듯이, 부유하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비난이 정당화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정부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부자들은 그 세금을 포함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정부는 그 세금을 어두운 구석구석까지 공정하게 잘 배분해야 한다. 그것이 양극화의 덫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균형을 잡아가는 길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정당하게 부를 이룬 사람들이 칭송받고, 누구나 그런 부자의 꿈을 자유롭게 꿀 수 있는 사회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꿈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보여줄 책임은 바로 현재의 부자들에게 있다.
부자들이여, 함께 가자고 세상에 손을 내밀자. 어쩌면 그것이 당신의 부를 더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선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