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칼럼 [세금/회계] – 트러스트(trust) 관련 오해들 (2)
인생의 마지막 숙제 — 왜 이렇게 먼지 쌓인 ‘빈 깡통’ 트러스트가 많을까
취소가능 리빙 트러스트(revocable living trust, 생전신탁)를 둘러싼 오해들을 바로잡는 두 번째 시간이다. 서류만 준비했다고 안심했다간, 정작 상속 시점에 가족들이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오해 4) 트러스트를 만들어도 부동산 명의까지 바꿀 필요는 없다? 가장 치명적인 오해다. 트러스트는 일종의 ‘법적 바구니’다. 이 바구니에 담긴(funding) 자산만이 법원 검인절차(probate) 없이 가족에게 이전된다. 중요한 자산들이 트러스트로 이전(title transfer) 되지 않고 여전히 개인 이름으로 남아 있다면, 그 트러스트는 아무 기능도 못하는 ‘빈 깡통’에 불과하다(Uniform Probate Code, IRS Pub. 559).
트러스트 설립은 ‘최고급 금고’를 구입하는 것과 같다. 펀딩(이관)은 그 안에 ‘보석’을 채워 넣는 과정이다. 사망 후 금고를 열었는데 텅 비어 있었다면, 자녀들이 얼마나 허탈하겠나? 너무 투박한 설명이지만, 트러스트로 자산들 명의가 이전되지 않았다면 그 트러스트는 빈 금고, 빈 깡통에 불과하다.
(오해 5) 미국에서 만든 트러스트가 한국에서도 그대로 인정된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쉽지 않은 얘기다.
한국 부동산을 미국 트러스트 명의로 등기하는 것이 해보면 쉽지 않고, 한국의 은행계좌 역시 미국 트러스트 명의로 넘기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세상에 절대로 불가능한 일은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나중에 분쟁과 세금 문제가 복잡하게 얽힐 수 있으니 신중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한국 트러스트를 만들어줄 변호사를 소개해달라는 상담도 많이 받는다. 그것도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 양쪽에 자산이 있으면 한국에서는 가족신탁(foreign trust)과 유언공증의 조합으로, 미국에서는 미국 트러스트로 이원화 시키는 전략(two-track strategy)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오해 6) 트러스트에 넣으면 빚쟁이(creditor)가 손을 못 댄다? 이것은 위험한 오해다.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일반적인 취소가능 리빙 트러스트는 채권자 보호 기능이 거의 없다. 설립자(부모)가 마음대로 재산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고, 자신을 위해서 그 재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트러스트와 설립자 개인은 같이 취급된다.
그러니 개인에게 소송이 들어오면 트러스트 안의 자산도 함께 압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라면, 채권자도 법원을 통해서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특별한 목적을 가진 트러스트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것은 오늘 할 얘기는 아니다.
(오해 7) 트러스트는 한 번 만들면 끝이다? 절대 아니다. 인생은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 이혼과 재혼, 자녀의 결혼, 자산의 변화, 그리고 세법 개정에 맞춰 트러스트도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취소가능 리빙 트러스트는 설립자가 살아 있을 때만 수정과 취소가 가능하다. 사망과 동시에 그 트러스트는 설립자 개인과 분리되어, 취소와 수정이 불가능한(irrevocable) 트러스트로 바뀐다. 즉, 사후에는 손을 쓸 방법이 없다. 그 전에 제대로 고쳐놓지 않으면 그 부족함은 고스란히 남은 가족들의 문제로 남는다.
트러스트를 만들었다면 일단은 큰 일을 해낸 것이다. 대견하고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그 서류만 갖고는 인생의 마지막 숙제를 끝낸 것이 아니다. 제대로 펀딩하고 관리하고 최신 상태를 유지해놓았어야 숙제를 제대로 한 것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