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칼럼 [세금/회계] – 트러스트(trust) 관련 오해들 (3)
인생의 마지막 숙제 — 트러스트를 만들면서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세 가지를 해봐야 인생을 깨닫는다고 한다 – 직접 집을 지어보기, 동네 시의원이라도 선거에 나가보기, 그리고 트러스트와 유언장을 만들어 보기.
취소가능 리빙 트러스트(revocable living trust)를 중심으로, 그동안 트러스트를 둘러싼 여러 오해들을 살펴봤다. 오늘은 남은 오해들 3개를 추가하면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오해 8 : 트러스트는 고액 자산가들에게만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중산층에게 더 필요하다. 내가 죽으면 법원은 ‘문주한 회계사가 죽었으니, 그에게서 돈 받아갈 사람 있으면 손을 들라’고 하면서 내 모든 재산 내역을 공개한다. 이 프로베이트(probate) 절차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변호사와 법원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 법원 검인절차를 피하는 방법이 바로 ‘트러스트’다. 옛날과 달리, 트러스트 만드는 변호사 비용도 많이 낮아졌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건물 한 채만 갖고 있어도 프로베이트 비용보다 트러스트 만드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
오해 9 : 내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트러스트만 있으면 자녀들이 알아서 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오해다. 트러스트를 만들 때 보통 최소한 두 가지 문서를 함께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정 관련 위임장(durable power of attorney)과 의료 지시서(health care proxy 등의 advance directive).
재정 위임장은 트러스트에 편입되지 않은 자산의 관리, 마지막 세금신고, 소셜연금 관련 업무 등에 필요하다. 의료 지시서는 수술 결정, 연명치료 여부 등 생명과 직결된 결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이 추가 서류들이 없으면 트러스트가 있어도 여러 가지로 낭패를 볼 수 있다.
오해 10 : 모든 재산을 트러스트로 옮겨 놓으면 메디케이드(medicaid)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역시 많이들 오해하는 부분이다. 취소가능 리빙 트러스트에 들어 있는 재산은 메디케이드 수급 자격을 판단하는 심사(means test) 과정에서 여전히 본인의 것으로 간주된다.
프로베이트 회피 이외의 특수목적 트러스트들은 우선 담당 회계사와 먼저 상담을 해보기 바란다. 세금을 줄이고 싶나, 소송으로 재산을 잃을까 걱정이 되나, 남은 재산을 교회 등에 남기고 싶나, 또는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고 싶나 – 목적에 맞는 여러 취소불능 트러스트들이 있다.
결론 : 오늘까지 세 번에 걸쳐서, 트러스트와 관련된 대표적인 10개의 오해들을 정리해보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트러스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트러스트 그 자체보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사실은 더 소중하다. 내 가족 관계와 내 재산의 상황을 ‘디테일하게’ 정리하고, 앞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객관적으로 내다볼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다. 가족들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고, 그동안 차마 못 나눴던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클리넥스 한 통을 다 쓴 분들도 봤다.
트러스트는 내가 떠난 뒤에 ‘내 재산이 남은 가족과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주는 도구다. 나아가 내가 치매나 사고로 의사결정을 못할 때 내 존엄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트러스트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다시 강조하지 않더라도, 트러스트와 유언장, 위임장 같은 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본인들이 벌써 알고 있다. 문제는 ‘내일 당장 죽을 리 없다’는 근거 없는 확신과 막연히 미루는 습관에 있다. 곧 세금신고 시즌이 돌아온다. 이번에는 내 회계사에게 한 마디 질문이라도 해보자. ‘나도 트러스트가 필요하오?’ 인생의 마지막 숙제 –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